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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도의 개념

by 자유로운 영혼들 2022. 6. 30.

프로이트는 성 이론에 관한 3편 에세이에서 이미 리비도 하는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생물학에서, 인간과 동물이 성적 결핍을 느낀다는 사실이 성적 욕구라는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영양 섭취의 결핍, 즉 굶주림에 빗댄 것이다. 대중의 언어에는 성적 욕구의 "굶주림"을 적절히 표현할 용어가 없다. 그래서 과학은 "리비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프로이트의 정의에서, "리비도"라는 용어는 전적으로 성적 욕구로 쓰이는 것 같다. 의학용어로서 "리비도"는 분명히 성적 욕구를 뜻하는 것으로 쓰였다. 특히 정욕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키케로와 살루스티우스를 비롯한 고대인들의 글을 보면 이 단어의 고전적 정의는 그런 식으로 성적 욕구로만 쓰이지는 않았다. 고전에서 이 단어는 모든 열정적인 욕망을 뜻하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내가 여기서 이 정의를 언급하는 것은 단지 앞으로 이 정의가 우리의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리비도"라는 단어가 의학용어로 쓰일 때보다 훨씬 더 폭넓은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비도라는 개념은 우리가 심리적 장면의 이동성을 설명하기 위해 찾고 있는 동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이 개념을 이용하면, 문제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해진다. 이해 불가능한, 이성애적인 요소가 동성애적인 요소를 대체한다는 따위의 주장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이제 우리는 리비도가 동성애적인 표현을 점점 줄이고 똑같은 양만큼 이성애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동성애의 요소가 실질적으로 사라진다. 동성애 요소는 이제 알맹이 없는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남고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동성애적인 요소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 의해 부정당한다. 우리가 무작위로 선택한 사람이 살인자로 확인될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과 똑같다. 리비도라는 개념을 이용하면 고립된 성적 기능들 사이의 많은 관계가 쉽게 설명된다.

 성적 요소들이 다양하다는 초기의 사상을 포기해야 한다. 이 사상이 마음의 기능에 관한 고대의 철학적 인식 중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구원하고 있다. 이제 이 개념의 자리를 복합적인 적용이 가능한 리비도가 차지하고 있다. 초기의 요소들은 단지 행위의 가능성만을 나타낸다. 리비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면, 뿌리가 서로 다른 분리된 성욕이라는 원래의 개념은 하나의 역동적인 단일체로 대체되며, 이 역동적인 단위가 없어지면 과거에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 그대로 남긴 하지만 알맹이가 없이 행동의 가능성으로만 남게 된다.

 우리의 인식에 나타난 이 발전은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로베르트 마이어가 역학에 소개한 것과 똑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에너지 보존이라는 개념이 힘들어 에너지를 표현할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이 힘들로부터 원소로서의 특징을 제거하는 것도 똑같이, 리비도 이론도 그와 비슷하게 성적인 요소들로부터 원소로서의 심리적 "기능"이라는 개념을 제거하고 이 요소들에 단순히 외형적인 가치만을 부여한다. 이 개념이 요소들의 이론보다 훨씬 더 현실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리비도 이론으로 우리는 앞에 예로 든 젊은이의 성욕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가 이성애를 확고히 결정한 바로 그 시점에 그가 경험한 실망은 그의 리비도를 다시 이성애적인 표현에서 동성애적인 형태로 바꿔놓으면서 그의 동성애를 전면으로 불러냈다. 

 여기서 나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 비교하는 것이 아주 그럴듯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에너지 보존 법칙과 리비도 둘 다에서 에너지의 효과가 사라질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이 에너지는 그사이에 도대체 어디에 있었으며, 이 에너지는 어디서 다시 나타나게 될까? 경험에 입각한 원칙으로서 이 관점을 인간 행동의 심리에 적용하면, 우리는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개인의 심리발달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단계들이 에너지의 관계로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우울증이 있거나 음울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거나 정신적 태도가 다소 과장된 사람을 만날 때면, 우리는 거기엔 리비도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런 경우에 이 과잉은 리비도가 지나치게 적은 다른 어딘가로 옮겨져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신분석은 리비도가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장소나 기능을 발견하고 그 균형을 되찾아주는 방법이 된다. 따라서 신경증의 징후는 리비도로 넘쳐나는, 과장되고 따라서 불안한 기능이 겉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이 목적에 이용된 에너지는 다른 어딘가에서 왔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를 잃은 곳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 정신분석학자의 임무이다. 리비도의 결여가 주된 특징인 그런 징후가 나타나는 콤플렉스들, 예를 들어 무감각한 상태들은 우리에게 반대의 물음을 던지도록 한다.

 이런 경우엔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리비도가 어디로 갔을까? 환자는 리비도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면 환자의 말을 그대로 믿는 의사들이 간혹 있다. 이런 의사들은 원시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일식을 보면서 태양이 삼켜져 죽었다고 믿는 원시인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태양은 단지 숨었을 뿐이다. 이 환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리비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비도는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환자 본인에게조차도 접근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피상적으로 보면 이런 경우엔 리비도가 결여된 상태이다. 리비도가 머무는 그 숨겨진 장소를 찾는 것이 정신분석의 임무이다. 리비도가 숨어 있는 장소는 대체로 환자가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숨겨진 장소는 무의식으로도 불리는 비 의식이며, 거기에 신비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전혀 없다.

 정신분석의 경험은 우리에게 의식적인 공상과 비슷하게 무의식적인 공상 체계라고 할 수 있는 비의식적인 체계가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신경증적 무감각을 보이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이런 무의식적 공상 체계들이 리비도의 대상이다. 무의식적 공상 체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단지 비유적으로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의식의 밖에 존재하는 심리적 단위를 필요불가결한 가설로 받아들인다는 그 이상을 뜻하지 않는다. 경험은 우리에게 리비도의 성향에 지각할 수 있는 쪽으로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 심리 과정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정신과 의사들이 잘 아는 이런 환자들의 경우에는 망상의 복합적인 징후들이 상대적으로 아주 빨리 나타나는데, 이는 심리적 전개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면서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 징후들을 의식으로 들어온 즉시 형성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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